기사입력 2011.10.24 17:30:38 | 최종수정 2011.10.24 20:58:48
# 스티브 잡스는 제품 디자인에서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을 선호했다. 반대하는 측근에게 그는 "이 방 안을 둘러보라고!"하면서 화이트보드, 테이블을 가리켰다. 또 "바깥을 내다보면 더 있소"라며 측근을 이끌고 나가 자동차 창문, 게시판, 도로표지판을 가리켰다.
# 한 번은 의사가 병원에 입원한 잡스 얼굴에 산소 마스크를 씌우려 했다. 그러나 잡스는 그것을 벗겨 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투덜거렸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다섯 가지쯤 가져오라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고르겠다고 했다.
이제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남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전기 `스티브 잡스`(민음사)가 24일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됐다. 지난 8일 타계한 잡스는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광적으로 완벽한 디자인에 집착했다. CNN의 전 CEO이자 타임지 편집장이었던 저자 월터 아이작슨은 "잡스는 열정과 악마성, 자기애로 가득한 비범한 재능을 가진 완벽주의자"라고 평가했다.
잡스는 공식 전기 집필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쓰는 게 싫어서 내가 직접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그의 완벽주의는 태생적인 것이었다. 책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교훈을 언급했다.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아내 로렌 파월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잡스(1991년).
완벽주의는 CEO가 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PC 속 부품의 배치가 아름답지 않다며 제품 발표 시기를 늦추고 모두의 반대 속에서도 애플이 운영했던 공장 벽을 하얀색으로 모두 칠하고 만족했을 정도였다. 이런 그의 열정이 IT의 물줄기를 완전히 뒤바꾸는 디자인을 갖춘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배경이 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의 완벽주의와 극단적인 자신감은 부하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제멋대로 화내고 사실과 다른 과학적, 역사적 주장까지도 자신만만하게 내세울 정도로 독재자였던 그는 늘 "이윤을 짜내고 싶은 게 아니라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고 싶다"고 외쳤다.
독설가였던 그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이 쇠퇴하는 이유는 제품의 질을 경시하고 세일즈에 가치를 두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말하는가 하면 독특한 면접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머저리가 급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직설화법을 구사하기도 했다.
잡스는 물욕이 없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애플의 직원들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차를 바꾸고, 집을 몇 채씩 사고, 지배인을 두고, 아내들의 성형수술에 돈을 쓰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갑부였지만 상주 관리인이나 개인 경호원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독재자 잡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예민하게 잡아낸다. 잡스는 애플의 협력 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격식 차린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탁자에 둘러앉아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오랜 인연도 소개했다. 애플이 아이패드에 삼성전자가 제조한 시스템온칩(SoC) A4를 탑재한 이유는 잡스가 인텔의 모바일 제품 제조 능력을 믿지 못하고 삼성전자의 신속한 개발력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SoC는 단말기 두뇌 역할을 하는 각종 시스템을 한 칩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잡스는 인텔이 일하는 방식이 증기선처럼 느린 데다 경쟁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아이폰, 아이패드의 SoC 공급사로 선정하면서 삼성전자는 SoC 시장에서 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잡스와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개발하면서 관계가 급속히 멀어진다. 2000년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내놓고 HTC를 통해 스마트폰을 선보이자 잡스는 대로한다.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개발할 때 애플 이사회에 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던 에릭 슈밋 구글 CEO와 잡스를 멘토처럼 대한 구글의 두 창립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잡스는 "(구글의 행동은) 엄청난 도둑질이다. 필요하다면 죽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내 인생과 은행에 있는 애플 자금 400억달러를 모조리 바쳐서라도 상황을 바로잡을 생각이다.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고 흥분한다.
애플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처음 만든 진영의 선봉장 HTC에 특허 소송을 걸었고 이어 안드로이드 진영 다크호스로 부상한 삼성전자를 다음 타깃으로 삼았다. 삼성전자가 아이패드의 칩 제조사라는 사실도 잡스의 분노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잡스는 그의 모순적 성격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는 자신의 양부모를 `100%` 부모님이라고 말하면서 생부모에 대해서는 "정자은행일 뿐"이라고 말했다. 선불교에 빠진 뒤 야채와 과일만 먹는 극단적 채식을 거듭했던 그는 대학 시절 환각제인 LSD를 경험한 것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주장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폭군이자 순수한 청년정신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잡스의 삶과 철학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연대기다.
[허연 기자 / 황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