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고독과 실존 파헤친 명상록
기사입력 2011.10.28 17:02:24 | 최종수정 2011.10.28 18:41:21
1662년 블레즈 파스칼이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지킨 가족과 친구들은 방을 정리하다 엄청나게 많은 초고를 발견한다. 메모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원고 묶음들이 방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유족은 이 미발표 원고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다. `팡세`는 그렇게 탄생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였으며, 발명가이기도 했던 파스칼은 다양한 저술 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물리학 기초인 파스칼의 원리를 만들었고, 전자계산기를 고안했으며 기하학과 확률이론의 기초를 세웠다. 이뿐만 아니었다. 도시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는 합승마차 시스템을 개발해 오늘날 시내버스 제도를 정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스칼을 파스칼이게 한,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저술은 그가 숨을 거둔 이후에나 세상의 빛을 봤다.
`팡세`는 프랑스어로 사상, 생각, 회상, 금언이라는 뜻을 지닌 말로 가족은 이 책을 명상록 형식으로 정리했다. 사실 `팡세`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문장 곳곳에 배어있는 기막힌 아포리즘(aphorismㆍ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잠언이나 경구)들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든지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든지 하는 명구들은 지금도 전 세계인들에게 회자되는 상징이자 은유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구절이 나오는 대목을 보자.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박살난다고 해도 인간은 죽음보다 고귀하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파스칼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사유(思惟)가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는 "인간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외쳤다.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로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다."
파스칼은 `팡세`를 통해 끊임없이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이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사실 `팡세`의 원래 저술 목적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널리 알리기 위한 데 있었다. `팡세`에 담긴 내용들은 대부분 파스칼 자신이 절대자를 인정하게 된 사유과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파스칼의 `팡세`를 종교서적이라고 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후세 사람들에게 `팡세`는 지성이 가득한 수상록이자 깊이 있는 명상서로 인식되어 있다. 필자 생각에는 17세기 중반의 지적 지형도를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파스칼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이성(理性)이 본능이나 쾌락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성은 종종 종교적 경건함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였다. 파스칼은 이성과 영성을 동일시하면서 종교가 결코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인간이 이따금씩 도달하는 정신적으로 위대한 경지는 인간이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중략) 나는 영원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그러나 자연에는 영원하고 무한한 필연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종교성 때문에 `팡세`는 처음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팡세`가 종교라는 틀을 벗어나 인간의 고독과 실존을 파헤친 명저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샤토브리앙, 보들레르, 니체, 에밀 졸라 등 후세의 다양한 지식인들이 스스로가 파스칼의 그늘에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팡세`는 프랑스 사상사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생각하면서 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 생각할 줄 아는….
[허연 기자 @heoyeonism(트위터 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