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색은 헌신과 슬픔, 노란색은 해방감과 기쁨
책 ‘색의 정신세계’에 담긴 다양한 분석
▲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일상 속에서 자주 주고받는 질문이다. 혈액형처럼 좋아하는 색을 통해 상대방의 성격을 유추해보려는 것이다. 이는 ‘색의 연상성’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빨간색은 흥분, 놀람, 싸움, 정복, 열광 등을 연상시킨다. 이 같은 연상성 안에는 ‘활동성(적극성)’과 ‘따뜻함(열정)’의 느낌이 들어 있다. 실제로 빨간색은 혈압, 맥박, 호흡 등을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고 뇌파를 흥분시킨다. 연상성을 비롯해 색(色)의 다양한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가 ‘색의 정신세계’(태학원)에 들어 있다. 이 책은 인하대 미술학부 명예교수이자 서울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더 스페이스’ 대표인 유관호(70)씨가 펴낸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색을 감지하나
인간은 어떻게 색을 감지하고 분별할 수 있을까?<그림 참조> 뇌 속 회백질(灰白質·중추신경조직의 한 부분)의 3분의 1은 시각 정보전달 과정에 영향을 준다. V1 부위는 사물의 깊이, 색, 움직임을 감지한다. 이 부위는 여섯 개 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네 번째 층이 정보를 입력받는다. V2, V3, V3a는 사물의 윤곽과 깊이 분석을 통해 더욱 복잡한 현상을 다룬다. V4 부위는 생리학자 ‘제키(Zeki)’가 1977년 발견했다. ‘제키’는 이들 세포의 60% 정도가 지각된 대상들의 형태와는 관계없이 색에 대한 정보만 부호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우리 왼쪽 뒤통수 상단에 색을 지각하는 부위가 있는 것이다.
인류가 흑(黑)과 백(白)을 제외하고 가장 처음으로 인식한 색은 무엇일까? 빨간색이다. 이는 바로 피의 색깔이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색의 인지 세계는 점점 확장됐다. 오늘날 정보화 시대의 디지털 문화는 색의 세계를 거의 무한대로 확장시켜 놓았다.
색채 이론의 계보
색채 이론의 조상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가 주장한 것은 ‘모든 색이 백색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백색은 태양광을 말한다. 그 당시 이를 예견한 것은 대단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색에는 세 가지 단일한 순색이 존재하며, 이들은 사물의 4대 요소인 불, 공기, 물, 흙에서 연유한 흰색, 검은색, 노란색이라고 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더욱 발전시켰다. 다 빈치는 여섯 가지 단일색이 존재한다고 했다. 흰색과 검은색은 빛과 어둠, 노란색은 흙, 초록색은 물, 파란색은 공기, 빨간색은 물이라고 했다. 다 빈치는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회화론’을 집필했다.
근대에 와서 과학적 토대로 색채이론을 확립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튼이다. 뉴튼이 발견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스펙트럼이다. 그는 태양광 안에 가시광선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의 시각에서 밝혔다. 이것이 근대 색채론의 시작이다.
뉴튼의 이론에 반기를 들고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 바로 괴테다. 뉴튼이 과학적·물리적 현상을 분석한 것과는 달리 괴테는 정신적·내재적 부분을 다뤘다. 그래서 색채심리학을 이해하려면 괴테의 색채론을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이다. 1810년 ‘색채론’을 펴낸 괴테는 뉴튼의 과학적 이론에 반기를 들고 그에 대항했다.
1835년 프랑스의 셰브럴(Chevreul)은 ‘색채 조화와 대비의 원리(The Principles of Harmony and Contrast)’를 출판했다. 이 책 속에는 회화, 인테리어 디자인, 모자이크, 컬러유리, 원색지도, 복장 등의 색에 관한 참고 재료들이 담겨 있다. 이후 음악가 쇤베르크, 화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이 색채론을 발전시켰다.
색채 이론의 3단계 접근방식
색채이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3단계 접근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는 색의 물리적 현상에 대한 이해, 즉 색료와 색광에 대한 기초 지식이다. 두 번째는 색의 지각현상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미술이나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적 단계다. 색의 지각현상에 대한 진화 단계를 보면, 마치 미술의 표현 역사의 진화 단계를 보는 것과 같다. 세 번째는 심리적 반응을 나타내는 단계이다.
이 책은 세 번째 단계인 색의 정신세계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색의 심리적 분야는 미술, 디자인뿐만 아니라 의학, 과학 분야에서까지 폭넓게 연구·발전되어왔다.
출처 : 조선일보 2007년 11월19일 [zoom in] 책, 色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