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입문 - 제3장 의식과 두뇌 변화를 통한 내적 깨달음 > 난치병 연구 Study for incurable disease | MS Quantum Neuroscience Institute

뉴에이지 입문 - 제3장 의식과 두뇌 변화를 통한 내적 깨달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07-12-18 16:58:57    조회 : 561회   
제 3장 의식과 두뇌 변화를 통한 내적 깨달음

 우리가 사는 오늘날에는 인간 의식의 확장과 변화에 대한 경험이 다양해진다. 빛, 사랑, 통교, 깨달음, 에너지, 영원성에 대한 경험들은 '초월적인 경험', '초인격적인 경험'으로 불리고 있다. 물병자리의 자녀들인 뉴에이지추종자들은 이것들을 시간에 따라 나타나는 새 언어의 탄생같이 인간정신이 잠재력의 개화로 인해 다른 차원, 더 진보된 상태에 도달했다는 징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상태는 두뇌 속의 물질 변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변화과정은 자신의 의식을 자각하는 주의력를 통해서 시작될 수도 있다. 인간을 더욱더 풍부하게 하고 주의 깊게 하는 정신상태로 인도할 수 있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잠재력의 변화능력을 대변하고 있다.
 ▣ 오른쪽 뇌와 왼쪽 뇌의 조화
 두뇌 변화는 물병자리의 자녀들에게는 매우 경이로운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실험을 해봐야 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체육교사가 신체를 단련하는 법을 알고 있듯이, 우리들은 우리의 주의력을 '강화'하고 내적 감각을 예리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각 두뇌 반구는 분리된 의식의 중심부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심한 간질병 환자에게 한쪽의 아픔이 다른 쪽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양쪽 두뇌 반구를 연결하는 신경을 절개하는 수술을 한 것을 관찰한 결과, 뇌가 마치 서로 분리되어 작용하는 두 개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오른손이 움직이는 것은 문자 그대로 왼손이 움직이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식 습득 면에서 보면, 오른쪽 두뇌는 본능, 상상, 꿈, 전체론적인 지각 등을 다루는 마음(감정)의 중심부인 반면에 서양사회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왼쪽 두뇌는 언어, 수학, 작업의 완성, 측정, 분석, 조직 등 이성의 중심부이다.
 두 개의 뇌를 연결시키는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이 있다면 두개의 뇌는 더욱더 상호간에 풍요롭게 될 수 있다. 명상, 주술, 시, 만트라 등의 방법은 그 부분의 신경세포를 증가시킴으로써 두 반구를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 뇌와 왼쪽 뇌를 조화시킴으로써, 즉 지성과 감성, 이성과 마음의 양극성을 화해시켜 인간의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 조화는 물병자리의 자녀들에게는 '위대한 종교들에 나타난 신비의 핵심'과 같은 것이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에게는 인도에서 나온 영성은 서양문화에 바로 '상반되는 두 극을 바로잡는 청량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서양이 나무들을 선별하고 숫자를 세고 있을 때 동양에서는 숲을 명상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은 동양 종교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은 베다, 부처, 노자 자체에 매혹되기보다는 명상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데, 논리적 사고와 직관적인 사고를 조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의식변화를 위한 내적인 경험
 인간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내적 경험이란 의식에 대한 의식적인 집중으로 주어진다. 왼쪽 뇌가 분석 활동을 원하지 않는 이상하고 명확하지 않는 무미건조한 사고 대상에 대해 특별히 집중하는 것에서 얻어 낼 수 있다. 이것은 요가나 호흡법을 통해서, 만트라의 계속적인 반복이나 흰 벽, 벌거숭이 바위, 예기치 않던 소리를 들음으로써, 또는 선불교의 공안(公案)처럼 역설적인 문제나 구절들을 대할 때 일어날 수 있다.
 '의식을 변화시키는' 기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퍼거슨은 오랜 연구 끝에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1) 감각을 고립시키거나 충전시키는 것, 즉 지각된 정보에 대한 수정은 의식변화를 만들어낸다.
 2) 바이오피드백 또는 의식적 컨트롤이나 일반적으로 말해서는 근육 긴장, 체온이나 뇌파의 활동 같은 무의식적인 신체의 움직임이 있다.
 3) '자생적 트레이닝', 즉 여러 가지 자기암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열측정, 체중, 호흡, 긴장완화 등으로 자기 신체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한다.
 4) 회화, 저작, 도예, 음악, 성악 등과 같은 창조 행위를 강조하는 이에게, 창조하는 동안 그 속에 몰두하여 자신을 잊게 하며 오른쪽 뇌를 발전시킨다.
 5) 놀라운 심미적인 경험, 자연에 대한 명상은 '전율'을 낳고 사이코드라마는 놀이나 역할 안에 자신을 완전히 투여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6) 최면술이나 자기 최면.
 7) 모든 명상 가운데 동양의 것으로 선, 요가, 라자 요가(Rahja Yoga), 탄트라 불교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법과 서양, 특히 그리스도교적인 요소로서는 '초월적인 것'이 있다. 샤머니즘이나 마술은 주의력의 집중을 요구하며 수피(Derviches: 범신론적 신비설을 주장하는 이슬람교의 탁발승의 한 파-역자주)의 춤, 정령주의나 부두교에서 실행하는 방법들이 있다.
 8) 신지학파, 장미십자가, 구르지프(Gurdjieff) 그룹이 제안한 밀법전수를 위해 의식의 수정을 가하는 기법.
 9) 현대 심리학에서 쓰이는 여러 요법으로 유아기에 입은 외상적 경험을 갑자기 되살림으로써 나타나는 '야생적인 고함', 사물을 보는 견해를 바꾸는 정신구조의 수정 작업에서부터 형태심리학(Gestalt)이 있다. 또 '신사고', '적극적인 사고', '자기 확신', '창조적 시각화'를 통해 치유하는 방법도 있다.
 10) 신체의 치료적인 단련요법으로는 태권도, 합기도, 하타요가, 검도 등의 일반적인 운동과 벽타기, 혼자서 하는 범선여행, 경기 등 특별한 것에서 느끼는 자기 초월감이 있다.
 11) 끝으로 역동심리학에서 볼 수 있는 자기를 인식하고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탁월한 여러 심리요법이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이 곳, 이 순간'을 살 수 있는 지혜와 '시도했던 일들을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운다.
 주의력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발전시킴으로써 의식을 확장시키는 기술들은 오늘날 모든 뉴에이지의 실험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옛날이나 오늘날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뉴에이지 추종자들이 여러 분야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인간 잠재력의 운동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창조적 시각화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 창조적 시각화
 시각화란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신적 영상이나 정신력으로 물질을 지배하는 창조적이고 심리적인 기술이다. 이 기술의 목적은 바로 신체 안에 있는 인간 감정의 외상이나 병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돈을 더 잘 벌기 위해서나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혹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되기 위해서 사용한다. "시각화를 통해 성공, 돈, 행복, 그밖에 무엇이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은 뉴에이지의 세속적인 저속함을 보여준다.
 이것은 샤머니즘, 부두교 또는 밀교에서 저세상의 영들과 교류하여 힘을 얻는데 사용되었던 오래된 기술이다. 단지 다른 점은 뉴에이지 추종자들에게 이 기술은 연금술이나 마법의 실행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기술로 다시 각성될 수 있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서 오는 것이다. 에너지-이때의 에너지는 정신에너지를 일컫는다-에 따름으로써 정신에너지는 물질영역에 변화를 일으키며 이때 물질은 에너지로 변형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꼭 얻으리라는 절대적인 확신과 그것이 실현되는 영상을 투사해서 시각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융 심리학파의 견해에서 인간의 심상은 무의식 차원으로 들어가서 더 나은 자신을 형성하게 된다. 역동심리학에서는 인간 두뇌의 스크린에 정신적인 영상투사는 인간성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종교적인 면에서 티베트 불교(탄트라)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적 시각화는 내적 치유(특히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으로)와 영적 계발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 의식 변화의 네 단계
 사람들은 돈을 주고 원하는 대로 물건을 사는 소비자처럼 어떤 요법을 사용했을 때 짧은 시간 안에 직접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다른 요법을 시도한다. 이것은 잘못이다.
내적 변화 단계에 부조화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같은 방법을 계속해서 써 봐야한다.
 의식변화를 정확하게 네 단계로 구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는 출발점으로서 책, 강좌 그리고 마약 복용의 경험으로 흥분과 열기에 가득 차 있는 시기이다. 오래 전부터 뉴에이지에서 환각제는 신비적인 체험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마약의 남용은 다른 차원에 사는 존재를 보았거나 내면으로 들어가는 여행에서 촉진제가 되는 등 애매한 것들이 많다. 이것은 비행 전에 날개를 태워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이는 발작을 신비로운 경험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계속 정진하는 사람들은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간다. 이것은 명상이나 신체적인 수련, 예술적 창조 작업을 통한 심혈을 기울이는 탐구 단계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벌써 탐구자들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여기에서는 신비를 벗기는 기술에 대한 연구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신비에 깊이 들어가는 통합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특정한 스승이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인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내적 스승을 선택한다. 어떤 사람은 이 내적 스승을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지막 단계는 바로 '공모'이다. 자아실현을 위해 사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취득하게 되면, 이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삶에 유용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하며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원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의식확장과 대체요법을 위해 적합한 방법을 이용한다.
이 가운데 명상은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유체이탈 (몸 밖의 여행)의 경험을 원한다.
 무디(Moody) 박사의 「삶 이후의 삶」은 깊은 혼수 상태에 빠졌던 사람들의 '몸 밖의 여행' 체험을 다루었다. 이 책은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 궁극적 도달점인 깨달음
 인간의 의식변화의 마지막 단계는 꿈 속에서 깨어나 새롭고 고차원적인 주의력과 다시 의식을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깨달음'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선불교에서 공안의 깨우침이나 힌두교의 삼매(三昧)를 떠올린다. 또 불교에서 말하는 현실의 진정한 모습, 즉 "모든 것은 변하고 고(苦)이다."를 체험한 사람들이 도달하는 '각(覺)'의 상태일 수도 있다. 또 힌두교의 핵심인 "너는 이것이다."에 대한 체험, 새로운 삶을 발견한 것과 같은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자아는 우주적 대존재와 융합되어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행성적인 행복감, 아름다움,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체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연구의 최고점은 바로 진정한 자아의 발견이다. 뉴에이지에서는 각자가 유일한 구원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변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자주 만나는 글귀이다. 그리고 이것은 1968년 5월에 일어났던 프랑스 학생혁명과 미국의 저항문화의 절망에서 재기한사람들의 체험일 것이다. 개인적·사회적인 변화과정은 자아를 다시 통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분열되고 완전 조각처럼 부서진 것을 체험한 후에 다시 자신을 찾는 것을 배우는 때의 감정과 같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출발할 때 더욱더 광대한 자아와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보이지 않는 광대한 대륙이 우리들의 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 자아가 그것보다 더 넓은 곳에 속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새롭고 다양한 사회의식이 탄생할 수 있고 개별적 자아를 넘어서 초월적이며 우주적 대자아인 초인격성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궁극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길에 들어서는 것, 즉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걸어가는 과정'이 벌써 도달할 목적지가 될 수 있다.
 성 가타리나는 "하늘로 통하는(이끄는) 모든 길이  바로 하늘이다."라고 말했고 세르반테스는 "길은 좋은 여인숙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전체론적인 견해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통합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육체에 대한 여러 방법들, 롤핑(Rolfing)이나 생체에너지, 메지에르(M?i?es)치유법은 인간의 육체가 현재나 과거의 정신, 심리적인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는 원칙에서 출발하고 있다.
 ▣ 선교와 친교를 이루는 하나의 변화
 이 모든 것은 결국 내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갈망 때문에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집착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과학적인 입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편견을 버림으로써 핵심적인 것을 알게되는 불교적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오른쪽 뇌의 탁월한 결실인 자신의 직감을 믿음으로써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자유롭게 될 수 있고, 계속적인 정진에 따라 얻어지는 현명함으로, 그리고 함께 그 길을 가는 동반자가 있다는 확신으로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수많은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특수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의식을 가진다. 그것은 그들이 인류의 번영을 위해 준비된 계획에 참석하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참여는 뉴에이지에서 신비에 가까운 헌신으로 나타난다.
미첼(Edgar Mitchell)은 달여행에서 돌아온 후 행성적이며 형제적인 새로운 의식을 탄생시키기 위해 여러 단계의 의식에 흥미를 갖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말한다.
 그는 정신과학 연구소를 창설했고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나는 마치 어떤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같다. 나의 모든 존재가 진흙탕에 빠져 도저히 나올 수 없을 때 구원의 손길이 개입되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물병자리의 자녀들은 모험 안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거대한 네트워크가 세상 어디에나 깔려 있고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축제를 함께 지낼 수 있으며 의사교환을 할 수 있는 조직이나 단체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행성적 변화를 위해 중요한 수단으로 뉴에이지에서 제안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 방법은 특히 인간 두뇌와 의식의 역할에 기반을 두고있다.
 ▣ 초인격적 교육
 교육에서 우선 문제되는 것은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무한하고 끝이 없고 경탄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초인격적 교육은 우리 자신 안에서 계발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면의 학생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자유롭게 인도하는 것을 취급하고 있다. 이 교육방법은 이때까지 시행되었던 비효율적인 교육제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옛날의 교육제도는 무엇보다도 정답을 맞히는 존재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개방된 존재로 키우는 교육방법을 등한시했다."
 뉴에이지에서 이러한 교육방법을 택한 이유는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방법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생들 안에 벌써 존재하고 있는 '그 자신에 대한 신뢰, 이니셔티브, 사교성, 자발성, 잠재능력, 용기, 창조성, 책임성, 기쁨' 등을 계발하도록 유도한다. 교육제도에서 오른쪽 뇌와 왼쪽 뇌의 작용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원리로 등장한다.
 이 모든 기술과 개념들을 합쳐 '초인격적 교육'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초월적인 능력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는 심리학의 한 분야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명석하고 자율적이고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되고, 의식적 경험에 깊이 숨어 있는 부분까지 파고들어 의미를 찾고, 자아의 깊이와 한계를 조절하기를 권하고 있다. 이 교육방법은 인간을 전인적인 면에서 보고 접근하는 것으로 전인적 의학치료 방법과 유사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교수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외부로부터 오는 지식을 단순히 습득하는 것보다는 이해하는 능력에, 단일적이고 의무적인 형태보다는 학과 강의의 다양성에, 진술된 것에 일치하도록 노력하기보다는 개인적인 연구에, 그리고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을 통해, 일정한 시간 안에 배워야 하는 교육 과정보다는 평생교육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교사는 학생들의 '사고나 이념을 낳게 하는 촉매자'가 된다. 교사는 학생들을 외적인 권위에 수동적으로 복종시키기보다는 내부의 목소리, 즉 내적인 스승의 목소리에 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동양의 선불교의 지혜인 "부처를 길에서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는 지혜를 배우도록 권고한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특히 두뇌의 역할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 문화는 더욱더 복잡해지고 과학은 다른 분야까지 통합하게 되어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그러므로 두뇌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오른쪽 두뇌는 개혁하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고 예견하는 능력을, 왼쪽 뇌는 분석하고 조사하고 증명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능력이 있다. 뉴에이지는 두 가지를 조화시켜 다가올 탐험의 새 시대를 준비한다.  물병자리의 자녀들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유산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능가하려고 한다. 그것은 "우리는 문화유산의 덕을 입은 상속자이지만 동시에 궁핍한 문화의 희생자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여러분이 습득한 것으로 여러분의 자녀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다른 시대에 태어났습니다."라는 히브리인들의 격언이나 "회전법을 가르치기 위해 갓 깬 나비의 날개를 분질러서는 안 된다."라는 민간 속담의 지혜를 따름으로써, 과거와 현재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발전된 공동의 지혜 앞에 자신을 열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자유로운 정신으로 비약하려는 경향을 지닌다.
 이제 사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교육, 심리, 영성적인 분야에 일반화하고 요약하는데, 이
것은 뉴에이지 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이른바 '초인격적 운동'이다.
 ▣ 초인격적 운동
 뉴에이지 운동의 최고 목적은 가시적이며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커다란 우주의식, 커다란 영인 '대실존'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의 본질에 계속적으로 적용하는 연구를 거듭한 결과, 초인격적인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에게 접근하는 방법에서 이것은 직접 경험하는 것 이상의 궁극적인 것에, 단순한 필요를 넘어서는 가치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천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에서, 혹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나 인본심리학에서 조직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던 최상의 가치인 인간 잠재력이나 능력에"  관심을 둔다. 인본심리학은 1950년대에 벌써 인간의 정신이나 심리 속에 숨어 있는 가능성에 가치를 부여했으며 에살렌 공동체나 인간 잠재력 운동에 활기를 주었다.
 초인격적 심리학은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접근을 통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고 직접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한계를 초월하여 자아의 다른 차원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프레베는 연구대상의 목록을 만든다.
 '일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형이상학적인 요구, 최고가치, 절정 경험(peak experiencer), 황홀경, 신비 경험, 성스러움에 대한 예감, 자아실현, 본질, 행복, 궁극적 의미, 경이로움, 감탄, 자아초월, 영, 일치, 우주의식, 개인이나 집단 에너지, 인간 관계의 최고화, 일상생활의 성화, 초월현상, 우주적 유머와 유희, 감각적 지각의 최고화' 등이다. 초인격적 심리학자들은 이 목록에 유체이탈 경험과 '죽음 직전까지 간 경험', 요기와 무당, 역술가, 예언자들의 능력을 첨가시킨다.
 뉴에이지 정신의 특징은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함께 모아 이용하며 가시적·비가시적 세계, 내적이고 외적인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킨다. 뉴에이지에서는 다양한 것들을 분류하거나 등급을 정하지 않고 혼합하여 하나로 사용하는데, 이런 면에서는 일원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성적인 것을 초정신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고양된 의식상태에 대한 연구를 영성적인 연구와 동일시하며 초심리적인 경험을 신비상태와 동일시하고 있다.
 초인격적인 운동은 새 시대로 돌입하는 데 탁월한 동력인의 하나로서 등장한다. 이 운동은 모든 분야에서 '자아'와 '의식' 간의 관계를 다시 건설하는 것이며 카프라는 「물리학의 도」에서 양자물리학과 도교의 신비주의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주창했다. 그는 인류를 고차원적인 의식상태, 즉 새로운 영성으로의 인도에 바탕을 둔 국가간의 공통적인 행위를 위해 헌신한다. 우주 대의식의 전능과 행위를 통해서 나라 사이의 갈등을 무마시키려고 세계 각국에 그들의 회원인 명상자들을 파견시키는 초월적인 명상 집단에서도 이러한 사상적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 심리학에서 신비학으로
 뉴에이지는 이 밖에도 영원하고 신적인 불꽃인 인간을 보호함으로써 인간 안에 소멸되고 있는 불꽃을 다시 살리려는 데에 관심을 둔다.
 초인격적 심리학은 인간이 다시 각성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과 수단을 제공한다.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점차로 인간 내면에 있는 신적 차원을 심리적으로 분석할 줄 알았던 대종교에 나타나는 신비적인 전통을 연구한다. 베다 전통에서는 "너는 이것이다(Tat vat asi)." 즉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절대자인 브라만이며, '너' 안에 거주하고 있는 아트만이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자는 '영혼의 선단'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이 들어감으로써 '신적 씨앗'을 찾아 하느님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이슬람교의 수피 신비가들은 인간의 마음을 유일한 하느님이 거주하는 비밀적인 거주지와 동일시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영지를 통해 인간이 원래 속해 있는 신성의 한 파편임을 자아가 깨달아 유한인간이 다른 차원으로 다시 깨어나길 원한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볼 때 우리는 초인격적 심리학에서 다루는 의식확장의 의미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유한자아에서 무한자아로, 내면에 있는 작은 빛으로부터 위대한 신적 빛으로, 사랑의 숨겨진 원천에서 대양과 같이 끝없는 자애로움으로 확장시키는 것을 초인격적 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다.
 ▣ 특수 인간학
 초인격적 운동은 유체이탈이나 죽음 직전까지의 경험에 흥미를 보인다. 사실 이러한 경험들은 모든 종교 안에 이미 나타났던 신비로운 사실들이다. 초인격적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험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척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청된다. 실체는 측정 가능하며 양적인 것에 제한되어 있다는 물질주의자들이 보는 관점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된다.  인간 안에 우주적 절대인 에너지 차원을 재통합하려고 노력하는 사상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다. 따라서 특수 인간학은 비가시적 세계와 인간의 영적 차원에 기반한 요법들을 개발하게 된다. 또 육체나 정신과는 다른 '제3의 육체', '에너지체' 개념에 관심을 보인다. 왜냐하면 우주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간에 모두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수 인간학에서는 필리핀 치료술사들의 샤머니즘을 받아들이고 침술이나 기치료법도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치료법들을 전체론적이고 의식적인 관점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물질주의 패러다임과 다른 면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주적 절대, 즉 에너지 차원 안에서 재편성하기를 원하는 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뉴에이지를 구축하는 새로운 요법을 만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