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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노산의 두 얼굴을 아시나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08-03-29 01:43:42    조회 : 701회   
아미노산의 두 얼굴을 아시나요?
기사입력 2008-03-28 18:45 

 
아모노산의 거물상 이성질체 : 탄소를 중심으로 똑같은 네 개의 물질이 연결돼 있지만, 오니손과 오른손처럼 거울에 비친 것 같은 대칭 구조를 갖고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다른 'D형 아미노산'이 별도 존재

자연계에는 없기 때문에 인공 합성으로 만들어 신약 원료로 사용

의약품 만들 때 잘못하면 약에서 독으로도 변할 가능성도 있어

웰빙 붐이 일면서 아미노산(amino acid) 제품이 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적이 있다.

건강 개선, 체지방 분해, 집중력 향상 등의 효과를 내세운 것이다.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은 이제 일상 생활에서 친숙한 용어가 됐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아미노산이 주목 받고 있다. 바로 '거울에 비친' 아미노산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아미노산과 구성 원자나 연결 모양이 똑같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다른 아미노산이다.

아미노산은 장갑의 오른쪽과 왼쪽처럼 거울로 본다고 가정하면 대칭 구조를 가지는 두 형태가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모두 한쪽 아미노산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반대쪽 아미노산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존재하지 않는 반대쪽의 아미노산이 인공 합성을 통해 신약(新藥)의 원천으로 주목 받고 있다.

■ 천사와 악마 쌍둥이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한 명은 천사이고 한 명은 악마이다. 자연에는 이처럼 모양은 똑같은데 한쪽은 약이 되고 다른 쪽은 독이 되는 물질이 있다. 바로 '광학이성질체(光學異性質體)'다.

물리·화학적 특징은 같지만 한쪽 방향으로 진행하는 편광을 비출 때 물질을 통과한 빛의 회전 방향이 달라서 광학이성질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키랄(chiral)' 물질이라고도 말한다. 키랄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손(hand)'을 뜻하는 단어 '케이어(cheir)'에서 유래됐다.

광학이성질체 중 특히 거울 대칭 구조를 갖는 물질을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말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똑같은 입체구조를 갖고 있지만, 오른손에 왼손 장갑을 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은 대부분 광학이성질체의 어느 한 형태만을 갖고 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20가지 종류 중 글리신을 제외하고는 아미노기가 왼쪽에 있는 L(Levo)형이다. 그러나 글리신은 아미노기가 오른쪽에 있어 D(Dextro)형이다.

생체 반응은 대부분 단백질 효소에 의해 일어나는데, 효소는 어느 한쪽 광학이성질체만 받아들인다. 자연 물질이 한쪽 광학이성질체만 있는 까닭이다.

반면 자연 물질을 인공 합성하면 절반은 L형, 나머지 절반은 D형으로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어느 한쪽만 원하는 기능을 나타내고, 나머지 반쪽은 아무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한쪽은 원하는 기능을, 다른 쪽은 완전히 반대 기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미노산의 하나인 글루탐산의 경우 L형은 감칠맛을 내지만, D형은 신맛이 난다. 아로마의 일종인 리모넨의 경우 D형과 L형 이성질체에 따라 레몬향과 오렌지향을 넘나든다.

문제는 맛이나 향이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약에서 독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다는 데 있다. 1960년대 처음 호흡기질환 치료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의 경우 약효가 좋아 임신 중 나타나는 심한 입덧을 완화시키는 용도로도 사용됐지만,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수천 명의 기형아를 낳는 끔찍한 부작용을 가져왔다. 반쪽인 D형에만 약효가 있고, 나머지 반쪽인 L형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시판 당시에는 이 화합물의 입체 성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L형과 D형을 구별하지 않았기에, 입덧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임산부들이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출산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 노벨상을 가져다준 광학이성질체

D형 아미노산은 자연계에서 매우 드물지만, 일부 세균의 세포벽이나 펩티드 항생물질의 구성 성분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뭔가 특별한 기능이 있기에 자연적인 L형을 버리고 D형을 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맛이나 약효를 비롯한 다양한 아미노산의 기능이 D형 아미노산에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 D형 아미노산을 원료로 한 아미노산 유도체는 3000종이 넘는다. 의약품을 비롯하여 식품, 화장품, 농약, 화공품 등 다양한 곳에 이용되고 있다.

이 중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의약용 원료다. D-아르기닌, D-루신, D-페닐알라닌, D-트립토판 등이 대표적이다. 또 D-세린은 정신병 치료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D-아스파라긴산이나 D-메틸-D-아스파라긴산은 신경 내분비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하는 쪽의 광학이성질체만 골라 만들어낼 수 있을까. 2001년 노벨 화학상은 이 문제를 해결한 3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미국의 윌리엄 S. 놀즈 박사는 몬산토사 연구원 시절인 1968년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촉매를 이용해 두 개의 탄소 결합 사이에 수소 두 개를 끼워 넣는데 성공했다. 수소가 들어가면 물질이 한쪽 방향으로 뒤틀렸다. 놀즈 박사는 수소를 넣는 방향에 따라 원하는 광학이성질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 방법으로 1974년 파킨슨병 치료제로 쓰이는 아미노산 광학이성질체를 합성해냈다.

또 다른 수상자인 일본 나고야대학 노요리 료지 교수와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K. 배리 샤플리스 박사는 각각 수소를 끼워 넣는 새로운 촉매와, 탄소 결합 사이에 수소 대신 산소를 끼워 넣어 한쪽 이성질체를 만드는 촉매를 개발해냈다. 샤플리스 박사는 이 방법으로 심장 질환 치료제인 글라이시돌을 개발해냈다.

약효가 있는 한쪽 광학이성질체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약 복용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생겼다. 예전에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약효가 없는 반쪽 광학이성질체를 따로 만들거나 분리하지 않았고, 이렇게 만든 약에는 절반만 약효가 있는 광학이성질체가 들어갔었다.

■ D형 아미노산을 찾아라

D형 아미노산을 만드는 방법은 조금 차이가 난다. 일종의 융합기술(hybrid technology)이 필요하다. 아미노산 합성은 주로 미생물을 이용한다. 즉 우리 몸이 아미노산을 만들 듯 미생물에게 먹이를 줘 아미노산을 만들게 한 뒤 이를 정제하는 것이다. 이른바 미생물 발효 기술이다. 발효 기술로 일단 자연에 존재하는 L형 아미노산을 생산한 다음, 다시 D형으로 바꾼다.

L형에서 D형으로 바꾸는 데는 효소를 이용한다. 효소는 3차원 입체구조를 가지고 있다. 열쇠와 자물쇠가 맞듯 효소와 반응물질이 딱 들어맞으면 생체 반응이 일어나는 식이다. L형 아미노산이 효소에 들어맞으면 이 효소는 L형 아미노산을 D형 아미노산으로 바꾼다.

효소법은 친환경적이고 높은 순도의 이성질체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 효소는 대개 한 아미노산의 거울상 이성질체만 바꿀 수 있다. 수많은 거울상 이성질체를 변환시키려면 각각의 이성질체 분리에 적합한 효소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지난해 이화여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L형 아미노산을 D형 아미노산으로 바꾸는, 효소를 모방한 화합물을 합성해냈다.

D형 아미노산을 제조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D형과 L형의 아미노산이 50 대 50 비율로 있는 혼합물을 합성한 후, 나중에 D형만을 선별하는 방법이 있다. D-아미노아실라제(D-aminoacylase)나 히단토이네이즈(hydantoinase) 같은 효소를 이용해 혼합물에서 D형 아미노산을 분리한다.

그러나 효소를 이용한 D형 아미노산 생산법도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안고 있다. 생체 효소는 단백질이어서 열에 약하다. 이러한 불안정성 외에도 세포에서 보이던 기능이 아미노산 제조 공정에서는 나타나지 못하거나 이전과 다른 성질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 의약 분야 시장이 성장세 주도

최근 의약 수요 증가에 따라 D형 아미노산이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의약 분야에서 아미노산의 응용 규모는 작지만, 두 자리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해외 시장조사 기관인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2006년을 기준으로 합성용 아미노산의 세계 시장 규모는 의약 부문이 4억200만 달러, 바이오 관련 연구 부문이 3000만 달러, 기타 부문을 포함해 총 8억1650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분야는 의약 분야로 약 29.9%의 고성장을 보였다. 2012년에는 의약 부문 시장만 7억1200만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고, 이중 바이오 연구 부문이 4400만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성장 시장에서 D형 아미노산의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 의약품이나 식품 원료로 사용되기 위한 아미노산은 몇 종을 제외하면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의 바이오산업과 정밀화학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나, 원료 물질로서 고순도의 D형 아미노산 제조에 대한 경제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D형 아미노산은 L형 아미노산에 비해 5~10배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인 효용성을 갖는 공정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각종 D형 아미노산이 대량 합성될 수 있을 때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최윤정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yjchoi@kisti.re.kr]

[이영완 산업부 기자(과학팀장) y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