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종족의 이동으로 문화·민족 재탄생 > 문화와 과학 Culture & Science | MS Quantum Neuroscience Institute

[커버스토리] 종족의 이동으로 문화·민족 재탄생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시 : 작성일2008-02-11 17:02:19    조회 : 425회   
동아시아 문명의 총괄적 이해, 북방·중화·동방문명 세 단위로 구분

cover6-1.jpg
산림, 초지, 강 등 다양한 자연 조건이 혼재된 대흥안령 지역. 과거 자연 환경의 변화는 정치적 격변과 종족이 이동으로 이어졌다. <김문석 기자>

근래에 들어서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몇 가지 흐름이 생기면서 갈등을 겪고 있다. 중국이 추진한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촉발된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새로운 사관의 해석들, 주체사관의 영향으로 힘을 얻은 좌파민족주의, 이러한 흐름들을 한통속으로 묶어 평가하는 부류가 주장하는 ‘국사해체론’과 ‘탈민족주의’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거주와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원래 단일민족이 아니었다면서 순혈-혼혈 논쟁마저 불러일으키려 한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의 근간이 된 원류에 대해서는 논란만 무성할 뿐 역사학계에서마저 공통된 함의가 없다.

북방지역은 우리 문화와 연관

정체성의 탐구 작업은 사회갈등과 집단의 위기를 야기하고 이러한 혼란들을 정리하며 상대적으로 무심했던 우리 근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발전의 동력과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우리 민족과 핵심 문화는 자생 문화를 토대로 외부에서 7~8개 루트를 통해서 진입해 들어온 결과물이다. 그 가운데에서 3개 루트 이상을 포괄한 지역이 흔히 말하는 북방지역이다. 이 지역은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이주뿐 아니라 정치력·군사력을 동반한 채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흔적이 강하며 국가의 흥망 및 민족의 운명과도 직결되었다.

북방지역이란 현재 한반도 이북의 넓은 지역 전체를 가리킨다. 이 지역들은 세석기 문화, 신석기 문화, 청동기 문화 등에서 우리 문화와 어떠한 형식으로든 연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토기, 암각화, 석관묘, 청동기, 고인돌 등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역사시대에 들어와 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 등 고대국가들의 건국과 발전 과정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조선(고조선)의 건국 지역과 흥망 과정, 부여와 고구려를 건국한 집단의 성격과 발원지 등 주제 면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늘 성격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쉽지 않은 다양한 종류의 매장 습속, 단군신화·주몽신화를 비롯한 건국신화 등의 신화, ‘나무꾼과 선녀’ 같은 설화들, 음식문화와 의복문화, 주거문화 등은 우리와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종족들 간에도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고구려의 기마문화, 활 숭배, 하늘과 태양 숭배신앙 등과 유사하고, 은나라·부여·고구려·동예의 점복풍습 등은 문화의 원류뿐 아니라 역사시대에 이르러 추가된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절대적이었다. 언어와 혈연관계에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구려와 부여, 부여와 거란, 거란과 선비, 고구려와 백제·동예·옥저 등은 언어가 대동소이했다. 이런 부분들은 종족의 친연성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고구려의 출발과 선비는 관련이 깊고, 거란과 고구려, 부여와 실위 또한 그리 먼 관계는 아니다. 말갈은 고구려와 발해에 속했으나 결국은 독자적인 길을 걷다가 민족과 국가를 건설했다. 그 외에도 역사상에, 또는 현재에도 잔존하는 정체불명의 종족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의 문화뿐 아니라 혈연과 언어상으로 관련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복합성 때문에 답사단에 참여한 학자들 사이에는 논리적임에도 상반된 학설들이 주장될 정도였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 성과와 사료 유물들을 바탕으로 각 분야의 전문 학자들이 학제간의 통합 답사를 실행하면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자연환경이 교차하는 북방

가장 필수적인 것은 자연환경의 이해와 변화된 사실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전근대에는 자연환경에 따라서 생활양식을 비롯한 문화가 영향받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종족의 대규모 이동이 발생했고, 때로는 동아시아 전반의 정치적인 격변으로 이어졌다. 또한 소규모의 종족 탄생과 이동도 자연환경과 연관이 깊었다.

cover6-2.jpg
대흥안령 지역에 거주하는 에벤키족의 사냥 도구. <윤명철 교수>
동쪽 아시아 지역은 다양한 자연환경이 만나고 교차하는 지구 상에서도 독특한 지역이다. 흑룡강 하구 유역 일대는 연해주 지역은 강들과 삼림이 울창한 대삼림지대이면서 바깥 쪽으로는 타타르해와 마주치는 지역이다. 대흥안령 산맥은 이름처럼 험준한 산악지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과 가축들이 쉽게 넘나들 정도의 평원은 아니었다. 큰 나무들이 거의 사라진 구릉지대나 초원을 전제로 평가하고 해석한다면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바이칼 주변 지역은 타이가지대로서 삼림과 이끼가 무성하며 순록·담비·곰 등의 짐승들이 서식하던 곳이다. 남쪽으로 내려와 훌룬부이르 초원과 동몽골 초원은 우수한 목초지대로서 소·양 등의 가축을 사육하기에 적합하고, 특히 말을 군사력으로 활용하는 유목민족들의 탄생지다. 이 지역은 동부여의 터전으로 알려진 눈강 하류와 북류송화강이 만나는 지역과 이어져 남만주와 관련이 깊다.

내몽골 북부지역은 건조한 초원지대로서 서쪽의 몽골초원을 지나 고비 사막과 이어진다. 무수한 종족의 집단이주와 각축전이 벌어지고, 기마군단의 발흥과 이로 인한 중국 북부지역의 혼란이 그칠 새가 없었다.

근래에 실체가 밝혀지면서 동아시아 역사의 중심 핵지대로 부상하고 있는 요동과 요서지방은 구릉조차 보기 힘든 대평원지대로서 수량이 풍부한 강들이 흘러가고 발해만의 해양과 만나는 지역이다. 농사에 적합할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교차로에 있으므로 다수 종족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인 곳이었다.

우리 문화, 우리 민족의 형성과 관련된 북방은 원래 다양한 자연 환경들이 교차한 복잡한 지역일 뿐 아니라, 이 또한 기후의 변동, 해수면의 변화, 인간들의 정치·경제적인 이익에 따라 몇 차례 변화되었음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 사실을 통해서 종족들의 이동과 습합 과정, 문화와 민족의 재탄생이라는 이 지역 고유의 ‘역사 메커니즘’을 찾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은 자연과 역사에 대한 국부적·미시적·각론적인 접근을 기본으로 하면서 통시적이고 범공간적, 그리고 총론적으로 큰 틀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다. 예를 들면 공질성이 강한 부분을 모아 큰 원을 만들어 ‘동아시아 문명체’를 설정하고, 그 안 지연환경과 종족, 문화를 고려하여 북방문명, 중화문명, 동방문명의 세 단위로 구분한다.

이렇게 하면 길고 광활한 동아시아의 역사뿐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 및 복합적인 성격을 이해하면서 정체성을 찾는 일에 한걸음 더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동방문명의 핵심이면서 북방과 깊은 연관을 맺었고, 소위 중화문명과도 일정부분 중복된다.

<윤명철|동국대 교수·고구려사 및 동아시아사>

스크랩 : 뉴스메이커 745호 2007년 10월 16일 커버스토리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5677&pdate=뉴스메이커-74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