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확장된 마음”이라는 내용으로 이 자료실에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만 그 내용이 너무나 피상적이라 황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장된 마음”과 자아초월을 연관 지어 글을 써볼까 하는데 이 역시 황당한 내용이라 글을 올리나 마나 한참 망서리다가 그냥 올려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은 표면의식, 개인무의식 그리고 집합무의식으로 구성된 3층 구조로 되어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표면의식은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우리의 생각 주체가 되는 의식이고, 개인무의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저장된 기억의 창고와 같은 의식이며, 집합무의식은 우리가 단세포로부터 진화하면서 경험하였던 모든 것들이 저장된 기억의 창고와 같은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집합무의식은 그냥 모든 기억이 저장된 잡동사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합무의식의 거의 대부분은 초월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초월의식은 진, 선, 미가 그 특성이고 전지전능이 그 기능이며, 사랑과 자비가 그 본색입니다.
우리는 흔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였던 기억과 지식을 토대로 우리들의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흥분하기도 하며, 행복해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피부 속에 갇혀 있는 육체와 더불어 슬퍼하고 기뻐하고, 흥분하고, 행복해 하는 이 존재를 “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들은 육체와 개인무의식을 합친 것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세계의 현인들은 육체와 개인무의식을 합친 “나”라는 것은 “가짜 나”라고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나”가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진짜 나”는 융파의 심리학 용어로는 집합무의식에 해당되고 시대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차이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즉, 신, 하느님(God), 영(spirit), 절대신성(the Divine), 참 자기(the Self), 주시자(the Witness), 순수한 현존(Presence) 순수한 각성, 공(空), 도(道) 혹은 궁극의 나(I) 등이 바로 그 이름들입니다.
범부와 현인의 차이를 보면, 범부는 “가짜 나”를 나의 전부인 줄 알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현인은 “진짜 나”의 존재를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범부와 현인은 생각하는 방식이나 내용도 전혀 다릅니다. 범부들은 산을 집중해서 바라보라고 하면 산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만 생각이 다 왔다 갔다 합니다. 구름들이 행진하듯 지나가고, 상념들도 행진하듯 지나가고, 신체적 감각들도 행진하듯 지나가고 마치 원숭이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나뭇가지를 타듯이 오만 생각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현인들은 산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레 바라보는 자는 없어지고 오직 산만 있게 되어 그래서 자신이 곧 산이 되는 순간이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기 밖에 있는 세상과 “나” 사이에 분리가 없어지고, 자신은 단순히 자기의 피부 안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게 되며, 이미 자기의 피부경계를 뛰어넘어서 멀리 가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나의 일부임을 알게 되며, 내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치 나의 손이나 나의 발을 취급하듯이 자연을 그렇게 취급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현인들은 말하기를 “가짜 나”에서 벗어나면 “진짜 나”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짜 나”는 애초부터 우리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진짜 나”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찾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진짜 나”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진짜 나”를 경험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될까요? 현인들은 말하기를 그것은 사랑의 실천이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나”의 특성이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조건 없는 사랑을 맹렬히 연습하면 저절로 “진짜 나”에 근접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랑이란 것은 어둠을 없애는 빛과 같은 것이며, 개인무의식 속에 저장된 슬픔, 불안, 공포, 분노와 같은 온갖 잡동사니 같은 마음의 쓰레기를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개인무의식을 완전히 녹이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집합무의식, 더 정확히 말하면 집합무의식 속의 순순한 초월의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실천은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슬픈 일에는 항상 슬퍼했고, 공포스런 일에는 공포를 느꼈으며, 불안한 일에는 불안을 느끼면서 단단한 조건반사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 나한테 이유 없이 욕을 하는데 이 사람을 상대해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이 순간에 사랑의 감정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가? 그래서 이 슬퍼하고, 불안해 하고, 화를 내는 습관들은 너무나 두터운 보호막으로 가리워져 있기 때문에 여간 해서는 사랑의 힘으로 녹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현인들은 말하기를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의 실천으로 이것을 녹이면 드디어 녹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부딪치는 사건마다 조건 없는 사랑으로 임하는 한편, 매일 일정한 시간을 만들어 조용히 명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맹렬한 반복과 연습에 의하여 드디어 우리가 집합무의식을 경험하게 되면 현인들은 말하기를 초월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내면에 있던 집합무의식이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집합무의식과 연결되어 내 몸도 내 마음도 나의 것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자아 혹은 초개인(트랜스퍼스날)의 시작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순간에 현인들은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재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바탕이며, 그러한 것의 본질은 곧 모든 것이고, 그러한 것의 본질은 곧 실재이며 그리고 당신이, 바로 당신이 그러한 것이다.”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나의 내면 속에 있는 집합무의식과 우주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집합무의식이 하나로 연결되는 현상을 쉘드레이크는 “마음의 확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인들은 말하기를 자아초월이란 결코 형이상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것이 형이상학이 아닌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아초월에 이르는 길을 마스터한다면 누구나 그것을 재현할 수 있고, 그래서 자아초월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http://www.dr4mind.net/
강길전 박사의 양자의학 - 양자의학연구실에서 발췌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2-26 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