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이 시작되면서 과학자들은 광자와 전자 등과 같은 소립자가 어떤 때는 입자(粒子)로 관찰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파동(波動)으로 관찰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과학자들을 몹시 괴롭히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입자(粒子)와 파동(波動)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데 한 순간에는 입자(粒子)가 되고 또 다른 순간에는 파동(波動)이 된다니 말입니다. 이 문제를 수학 방정식으로 해결한 사람이 하이젠베르그와 슈뢰딩거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해석의 실마리를 푼 사람은 보른이었는데 그는 파동(波動)이란 운동 현상이므로 입자처럼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파동함수의 제곱은 특정 입자(粒子)를 어떤 특정 위치에서 발견할 확률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파동 방정식 그 자체는 관찰할 수 없는 것이나 그 제곱은 어떤 특정 영역에서 입자(粒子)를 발견할 확률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계산에 의하여 전자(電子)가 발견될 확률이 A영역에서는 60퍼센트, B영역에서는 30퍼센트, C영역에서는 20퍼센트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전자(電子)를 관찰하는 순간에 전자(電子)는 B영역에 나타나면서(B영역은 100퍼센트가 되면서) A영역의 확률 및 C영역의 확률은 제로(0)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유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물리학자, 어떤 사람(K) 그리고 A문, B문, C문의 3 개의 문이 있는데 물리학자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K)이 A문을 통해서 올 확률이 60퍼센트, B문은 30퍼센트 그리고 C문은 20퍼센트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K)은 전자(電子)를 말하며, A문, B문, C문 등은 관찰 행위를 말하고, 어떤 사람(K)이 “문을 통과하기 이전”은 전자(電子)의 파동(波動)상태를 말하며, 어떤 사람(K)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은 전자(電子)의 입자(粒子)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자(電子)의 존재를 확률로 표시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상식적으로는 과학자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여 관찰을 통하여 전자(電子)가 있나 없나를 확인만 하면 될 일인데, 왜 전자(電子)를 관찰할 때는 이렇게 이상한 확률로 표시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양자역학자들의 생각에는 전자(電子)가 관찰되기 이전의 파동(波動)상태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의 가능성”만 가지고 있다가 과학자가 전자(電子)를 관찰하는 순간에 비로소 그것이 입자(粒子)의 상태로 그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전자, 광자 등과 같은 소립자가 관찰되기 이전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잠재성”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확률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했으며, 소립자가 이와 같이 가능태(可能態)의 상태로 존재하는 원리를 양자역학에서는 “불확정성 원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불확정성 원리는 주로 코펜하겐 대학의 물리학자들의 중심으로 주장되었기 때문에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관측의 문제”라는 것이 대두되었습니다. 즉, “존재의 가능성”만 갖고 있던 전자(電子)가 어떻게 과학자의 “관측”에 의하여 실제로 전자(電子)로 물현(物現)될 수 있다는 말인가? 다시 말하면 전자(電子)가 세 개의 문을 통과할 확률(60/30/20)로부터 파동함수가 붕괴되면서 실제적인 존재 B로 도약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양자역학자들은 “관측의 문제”를 중심으로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정말로 관측 자체가 전자(電子)의 가능태(可能態)에서 전자를 실질적 존재로 물현(物現)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정말로 전자(電子)는 관측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는 전자(電子)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데 그래서 만약 전자(電子)가 가능태(60/30/20)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양자역학자들은 이와 같이 “관측의 문제”를 중심으로 서로 상이한 주장을 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양자역학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학파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1. 코펜하겐 해석: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 학파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전자(電子)를 관측하기 이전에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관측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관측 이후”만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인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사상의 전부일 뿐, “관측 이전을 보러 간다”든지, “관측 이전의 존재 여부”를 해명할 필요도 가능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코펜하겐 학파의 이 확률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 숨은 변수 이론: 이 이론에서는 전자(電子)는 관측하기 이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전자(電子)는 관측하기 이전이나 관측하기 이후나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현재로서는 우리 인간이 전자(電子)의 관측하기 이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여 알 수 없을 뿐이지 전자(電子)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전자(電子)의 관측하기 이전의 상태를 탐구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것입니다. 이 “숨은 변수 이론”은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주장하였고, 봄(Bohm)은 나중에 계속된 연구에서 “숨은 변수”란 알고 보니까 “양자 포텐셜(quantum potential)”이라고 사실을 밝혔으며 그래서 “숨은 변수”란 용어는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고 “양자 포텐셜”이라는 용어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봄(Bohm)의 양자 포텐설은 “벨(Bell)의 정리”에 의하여 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고, 1983는 프랑스의 아스펙트는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3. 다세계 이론: 이 이론은 에버렛(Everett), 휠러(Wheeler) 및 그레엄(Graham) 등이 주장한 가설입니다.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입자(粒子)를 관측하기 이전에는 60/30/20이라는 가능태로만 존재하다가 관측에 의하여 하나만 100퍼센트로 물현(物現) 되고 나머지는 0퍼센트로 없어지고 만다고 주장하였으나, 다세계 이론에서는 입자(粒子)가 실제로 60퍼센트, 30퍼센트 그리고 20퍼센트로 존재하고 있으나 단지 그들은 우주의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입자(粒子)는 실제로 A라는 우주에도 존재하고 있고, B라는 우주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C라는 우주에도 존재하고 있는데 과학자는 단지 이 중에서 어느 하나의 우주에 존재하는 입자(粒子)만을 관측한다는 주장입니다.
4. 마음/물질 결합 이론: 이 이론은 위그너(Wigner), 사르파티(Sarfatti), 워커(Walker), 무지스(Muses) 그리고 베이넘(Beynam) 등이 주장한 이론인데, 이 이론에서는 관측이라는 것이 사람이 하는 행위이며, 이 사람의 관측 행위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위그너, 사르파티 및 베이넘 등은 과학자가 입자(粒子)를 관측하는 순간 과학자의 “마음”이 가능태의 입자(粒子)에 가서 작용하여 “가능태”를 “존재의 상태”로 물현(物現)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고, 워크 및 무지스 등은 입자(粒子)를 관측하기 이전의 상태가 바로 “마음” 그 자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세계적인 유명한 물리학자들도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하여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데 하물며 본인과 같이 문외한이 자기의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기는 하겠으나 그래도 용감하게 본인의 생각을 한 번 말해보고 싶습니다. 다음은 양자역학의 “관측의 문제”에 대한 본인의 용감한 생각입니다.
“워크 및 뮤지스 등이 주장한 것처럼 우주의 허공은 집합무의식으로 충만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역시 집합무의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가 입자(粒子)를 관찰하는 순간에 과학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집합무의식이 우주의 허공에 존재하는 집합무의식에 가서 작용하여 입자(粒子)를 생성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확장된 마음” 그리고 자아초월과 동일 선상에서 유추된 것입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에는 허수와 복소수가 등장하는데 저는 수학을 잘 모르지만 허수를 제곱하면 음수가 되고 음수를 제곱하면 실수가 되는데 이때 허수란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양자역학의 수식에서 모종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www.dr4mind.net/
강길전 박사의 양자의학 - 양자의학연구실에서 발췌